암환자에게 한방치료, 특히 한약치료는 우리나라에서 대놓고 하기가 눈치도 보이고 참 애매합니다.
그나마 나은게 침치료이긴 한데,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암진료 지침인 미국의 NCCN guideline에서 침치료를 추천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종양 담당 전문의들이 추천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대표적인 이유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 - 간기능, 신장기능, 다양한 항암요법들과의 약물상호작용 가능성, 수술 전 출혈 위험 등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위의 부작용들은 타이레놀 같은 일상적인 일반의약품 양약들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약이 문제가 될까요?
아마도 암치료하는 메이져 병원에서 믿고 의뢰할 전문가나 정보가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치료 경험이 체계적으로 쌓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환자들도 한방치료를 안 받거나 받더라도 종양 담당 주치의에게 치료사실을 숨기게 됩니다.
항암요법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 보자면, 암환자가 와서 생소하기만 한 한약을 같이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하게 될 때, 대처하기가 난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그래도 힘들게 종양 환자를 치료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약물까지 끼어 들어와서 치료를 교란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 등 외국에서 한의학 특히 한약에 대해 어떤 식으로 암치료에 활용하고 있을까요?
중국과 일본의 경우
한의학이라고 하는 체계는 한, 중, 일 등 중국문화권에서 중국의학이 전파되어 의료를 담당했던 문화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한국을 제외한 중국과 일본은 모두 같은 대형 병원 내에서 한방치료가 이루어 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암치료하는 의사들이 한약을 처방할 수 없거니와 국내 메이저 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치료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상급병원에 한의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베이징대학교, 칭화대학교, 수도의과대학교 등등의 대형 병원에는 중의진료를 하는 부서가 존재하고 있고, 반대로 여러 주요 중의약대학의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급으로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에 중의치료를 일정비율 이상 결합해서 환자를 보게 됩니다. 폐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환자들은 서의(현대의학) 진료만을 받는 환자들도 많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은 같은 병원에서 중의(한의)치료를 함께 받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중의약 발전이 헌법에 나와 있을 정도로 정부의 지원이 상당해서 정부주도의 대규모 한방 임상연구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학술지에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매우 다양한 한약처방(첩약)을 쓰고 있고 제약회사에서 가공되서 생산되는 한약제제(중성약)도 종류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상당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처방들입니다.
일본의 경우, 19세기 메이지 유신 때에 전격적으로 한의사제도를 폐지하면서 한방의사라는 직종은 사라졌고 현대의학 전공 의사로 의료가 일원화됩니다. 하지만 한약을 쓰는 전통은 지속되어 각 의과대학에 일정 시간을 한방(캄포) 교육을 하고 있고, 상당수의 대학병원에 한방치료를 하는 전담과가 있으며, 의사들이 한약제제를 쓰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한방의학 전문가가 되기 위해 외과의사, 내과의사 등이 따로 한방의학 인정의 과정을 연수하기도 합니다.
쯔무라 라는 한방제제만 전문으로 만드는 제약회사는 연매출이 1조원 정도를 넘는다고 합니다. 더더욱 일본에서는 70년대부터 한약제제(주로 가루 형태고 가공된 한약)에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200가지가 넘는 한약제제가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습니다.(참고로 우리나라는 56가지 처방의 한약제제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데 이들 약 생산하는 대부분 제약사들이 매우 영세하고 시장 자체도 축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처방되는 대부분의 한약제제들이 우리나라의 한의원이나 약국에서 투여되고 있는 처방들이기도 합니다. 실제 진료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전국의 의대에서 top 3 라는 오사카의대 부속병원에 한방과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캄포= 한방의 일어 발음)
오사카 의과대학병원의 한방과 & 진료 소개 |
미국
이번에는 미국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침치료는 미국에 워낙 많이 보급이 되고 연구도 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주요 암센터에서는 침치료는 이미 거의 다 쓰고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쓰는 한약의 경우 문화의 차이나 교육, 전문가의 부재 등으로 미국에서 침치료만큼 암환자에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상호작용이나 한약성분에 의한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 최고의 암센터 중 하나인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MSK) Center에서 한약을 환자에게 상담하고 처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Support Care Cancer. 2023;31(2):128.)
이 외래 기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1. 종양치료를 담당하는 팀에서 한약을 처방하는 통합의학 서비스로 진료의뢰를 하거나 환자가 스스로 통합의학 서비스를 찾아갑니다.
2. 통합의학서비스에서 환자는 조절되지 않는 증상이나 다른 충족되지 않은 수요들을 상담하고 한약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면 통합의학서비스에서는 한약 처방 계획을 세웁니다.
3. 통합의학서비스와 종양 담당 팀이 한약 처방 계획에 대해 상호 소통을 합니다.
4. 통합의학서비스에서 (한)약사에게 한약 투약 계획과 처방을 전송합니다.
5. (한)약사는 환자 상담 및 처방 조제를 진행합니다.
6. 통합의학서비스에서 증상, 부작용, 한약사용 기간 등을 경과 관찰하게 되고 필요에 따라 종양담당 팀도 참여합니다.
미국 MSK center의 종양환자 외래 한약 진료 프로그램
(from Support Care Cancer. 2023 ;31(2):128.)
외래 진료를 시행한 851명의 환자에게서 712명(84%)에서 한약을 실제 투여했고, 1266 건의 한약을 조제했으며 주요 목표 증상은 소화기 증상(37%), 통증(28%), 항암요법 관련 피로, 수면, 기분장애(27%)였습니다. 치료 만족도 조사에서 70.9% 환자들이 한약에 의한 증상 개선 효과에 만족했고 6.7% 에서 경미한 부작용이 있었는데 한약 중단 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암환자에게 한약투여는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좀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우리나라처럼 금기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처럼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어느정도의 과학적, 임상적 근거가 있다면 최고의 암센터에서도 한약을 거리낌 없이 투여할 수 있는 부러운 시스템도 살펴보았습니다.
실제 한약 자체가 거의 예외 없이 부작용이 너무 심하고 치료에 심각하게 방해가 된다면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심각한 주의가 있거나 전면적으로 사용을 금지해야 했을 것입니다.
한약이 적절하게 암환자에게 투여되기 위해서는
1. 종양을 치료하는 주치의사가 한의학적 소양이나 지식이 있어 직접 투여하거나, 또는 2. 통합의학 전문가(일본의 한방과 전문의사나 미국의 통합의학의사)와의 밀접한 소통을 통해서 과학적인 근거 내지 경험이 있는 한약들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처방해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국 의사와 한의사의 믿음과 소통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암환자에 대한 한약투여하는 경험과 시스템을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야 될 처지인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만, 미약하게나마 몇몇 뜻있는 우리나라의 의사 - 한의사의 통합 암 협력 진료에 기대를 걸어봅니다.